[삶의 뜨락에서] 꿈틀대는 기운
황금빛 해바라기, 강렬한 색채 그리고 꿈틀대는 기운은 결국 나를 Immersive Van Gogh 전시장으로 유혹했다. 이번 전시의 특이한 점은 그의 작품을 영상으로 만들어 음악과 함께 천장과 벽 그리고 바닥에까지 투사하여 관객을 완전히 흠뻑 젖게 하는 것이다. 영상의 한가운데 서서 360도로 작품을 감상하면 그 작품 속에 푹 빠질 수밖에 없다. 사람에 따라서는 어지러울 수도 있어 한 면씩 벽에서 멀리 떨어져서 보면 그림이 선명하게 보인다. 작품들이 살아서 움직인다. 해바라기가 춤을 추고 아이리스 꽃봉오리가 수없이 개화한다. 황금빛 벌판에 달콤한 바람이 분다. 노천카페가 서서히 움직이며 밤하늘에서 별들이 무더기로 쏟아진다. 그림은 벽에서 나와 내게로 다가온다. 내가 고흐가 되고 고흐가 내가 된다. 아주 특별한 체험이고 감동이다. 그의 자서전을 읽어보면 결국 나를 감동하게 하는 것은 자연 안에 모두 들어있다. ‘건초더미가 쌓여 있는 풍경’은 단조로운 초록의 목초지 광경이다. 이 그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늘이 보여주는 갖가지 색채와 색조이다. 보랏빛 아지랑이, 짙은 자주색 구름에 반쯤 덮인 빨간 태양, 이 구름의 끝은 눈부실 정도로 선명한 빨간색이다. 태양 근처는 주홍색으로 물들어 있고 그 위로 노란색 광선이 보인다. 그건 점차 초록색과 파란색, 흔히 말하는 하늘색으로 바뀐다. 그리고 여기저기 보라색과 회색 구름이 태양 빛에 물들어 있다. 하늘 한쪽을 표현하기 위해 이토록 섬세한 관찰과 노력을 기울이는 작가의 고백이다.‘나는 그림을 그리는 동안 내안에서 색채의 힘이 꿈틀대는 것을 느꼈다. 그건 아주 거대하고 강력한 어떤 것이었다.’ 우리에게 친숙한 그의 작품 해바라기, 붓꽃, 별이 빛나는 밤, 밤의 카페 테라스에서 볼 수 있듯이 그는 불꽃 같은 정열과 격렬한 터치로 눈부신 색채를 표현한 네덜란드 인상파 화가로 ‘영혼의 화가’ ‘태양의 화가’로도 불린다. 그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 중에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은 감상적이고 우울한 것이 아니라 뿌리 깊은 고뇌다. 내 그림을 본 사람들이 이 화가는 정말 격렬하게 고뇌하고 있다고 말할 정도의 경지에 이르고 싶다. 어쩌면 내 그림의 거친 특성 때문에 더 절실하게 감정을 전달할 수 있을지 모른다. 나의 모든 것을 바쳐서 그런 경지에 이르고 싶다. 그것이 나의 야망이다’라고 썼다. 그의 작품은 신비, 광기, 천재성 그리고 창조성으로 대변된다. 그는 늘 두 가지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하나는 물질적인 어려움이고 다른 하나는 색채에 대한 탐구다. 생에 단 한 점의 작품을 그나마도 헐값에야 팔 수 있었던 이 불운한 화가가 지금은 문화 아이콘으로 전 세계적인 문화유산이 되었다. 전시장을 나오기 전에 들린 선물센터에는 엽서, 포스터, 티셔츠, 머그, 우산 등 온갖 생활용품에 그의 친숙한 작품들로 우리 일상생활에 깊이 파고들었음을 보며 이 이윤은 다 어디로 돌아갈까 생각하니 씁쓸하다. 이처럼 뛰어난 천재 화가의 자질과 탁월한 예술가의 생애가 살아생전에 외면당한 채 백 년 후에나 인정을 받을 수 있는 우리 사회가 안타깝기만 하다. 작품의 관람은 존경과 찬미의 형식으로 예술가가 과거에 겪었던 냉대와 무관심에 대한 보상의 의미를 갖는다. 작품이 초고가에 팔리고 주목을 받을수록 ‘고흐 숭배’는 나를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정명숙 / 시인삶의 뜨락에서 작품 해바라기 황금빛 해바라기 태양 근처